(이전 이야기)
1부 “1차 &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그리고 일” 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제 근로라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도시화, 과학과 기술 발전을 통한 인류 진보를 추구한 모더니즘 사조, 그리고 이러한 철학과는 반대급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빈부격차, 인간소외현상 등을 다루었습니다. 짧지 않은 대립과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선진국은 사람들의 일과 노동, 건강한 사회적 성장을 향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르고노믹스(ergonomics)이라는 학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사람 중심의 산업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에 끌여들이고 적용하기 시작된 것은 초기 산업혁명이 아니라 1차와 2차 세계대전부터입니다. 오늘은 전세계적인 폭력과 갈등의 시간을 통해 뼈아프게 배운 교훈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부. 1차 &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그리고 일
2부. 전쟁으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
3부. 초격차 지식산업 시대, 고객 중심으로의 전환
2부. 전쟁으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하는 진실
이데올로기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교훈을 얻기 위해서 전쟁이 불가피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강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의 기준이자 질서가 되겠다는 그릇된 동기, 탐욕, 자만심은 평화를 파괴합니다. 오늘날에는 상생과 공존과 건전한 발전과 공동 선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로우며 아름다운 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을 얻기 위해 인류는 그 반대편의 가치관이 틀렸다는 것을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몸소 체험해야만 했나 봅니다. 가치관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생각, 문화, 교육, 기술, 산업, 사회, 경제, 경영, 정치, … 모든 영역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옳은 방향성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류가 이 가치를 얻기 위해, 지키기 위해,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피땀흘려 애쓰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이해하려면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그런 토론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싶고 누군가에게 미루고 싶고 내 삶에는 해당사항이 없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여’ 안타까운 사연이 참 많습니다.
컴포랩스의 비전
우리의 목표는 파라다이스를 이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가만히 놔두면 쉽게 망가져버리고 훼손되어 버리는 ‘인간성’이라는 본질을 붙잡고자, 그 훼손의 물살을 힘차게 저항하고 버텨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컴포랩스는 회복되어야 할 ‘인간성’의 모습들 중에서, 적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너무도 쉽게 아무렇게나(쓸 사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물건들을 찍어내고 팔아치우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지금의 시대에, 광고문구 중 하나로서의 ‘인체공학’이 아니라, 정말로 개개인의 삶을 더욱 편하고 윤택하고 건강하게 하는 인체공학이 되도록, 기업들의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되도록 애쓸 것입니다.
그나저나, 세계대전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 때 등장한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인적 요인’, 영어로는 Human Factor라는 말입니다. 이 용어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를 보면, 설리라는 기장은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양쪽 엔진을 모두 잃은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장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대한 공청회에서 “왜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을 한 것입니까? 다른 공항으로 틀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다른 공항에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한 위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We’ve all heard about the computer simulations, and now we are watching actual sims, but I can’t quite believe you still have not taken into account the human factor.” 여기서 말하는 human factor는 버드 스트라이크 직후 상황판단, 매뉴얼 확인, 의사결정에 걸리는 실제적인 인지 프로세스입니다. 사람은 AI 컴퓨터처럼 수 초 이내에 수 만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판단하고 보니 다른 공항으로 가는 것보다 허드슨 강에 착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인적 요인, human factor입니다. 실제로 인적 요인은 오늘날 IT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업무 전반에 연관되어 있을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개념은 전기전자 장치가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20세기 초반에 발전하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력이 뛰어나고 기술이 앞서더라도 인적 요인 때문에 전쟁의 양상이 뒤바뀌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정보의 부족이나 지휘관의 미숙함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복잡한 기계장치, 전자장치, 컴퓨터장치를 다루는 사람의 미숙함이나 실수가 중대한 실패를 불러오기도 하였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복잡한 기계전자장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조종사의 미숙함이나, 특정 상황에서의 판단의 실수 등으로 인하여 값비싼 전투기가 추락하거나 중요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더욱 제대로 훈련시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1900년대 초중반의 전쟁 이야기나 냉전시대의 모습을 다룬 영화들 중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극한의 신체적/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도록 특수요원을 훈련시키는 장면입니다. 주인공 한 사람이 수 백 명을 상대로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여 승리한다는 설정의 영화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훈련 프로그램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여하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사람들을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은 모든 인류의 역사에서나 지금까지도 가장 기본입니다. 하지만 세계대전 때는 좀 달랐습니다. 바로, 산업화가 되고 기계/전자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투기나 탱크, 미사일, 레이더 관제, 무선통신 등과 같은 첨단의 기기들이 등장하였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도구와 장비들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산업과 기술은 급속도로 발달하였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기술과 도구의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훈련만으로 되지 않는 ‘인적 요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행동과 인지활동의 원리, 신체적/정신적/감정적 한계, 인지부하, 실수와 오류의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단순히 사람을 훈련시켜서 뭔가를 잘 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실수하지 않고 쉽고 편하게 자신의 미션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게 됩니다. 즉 사람이 도구 사용에 적응하는 것(human fits product)에서 사람이 잘 쓸 수 있도록 도구를 만드는 것(product fits human)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오늘날 사용자중심설계(user-centered design), 사용자경험(UX, user experience), 고객중심경영 등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주제는 3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교훈, 그리고 방향성
서두의 이야기처럼, 20세기 초 인류는 두 번의 큰 전쟁을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사람중심의 제품 설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만 오늘은 인체공학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통하여, 어떤 과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훈련시켜 어떤 도구를 잘 사용하도록 만드는 일보다도,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도구를 만드는 일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사적인 승리의 목적뿐 아니라 산업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거나 이들이 더욱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기능을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기능을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몸에 잘 맞거나 사람들의 인지부하가 최소화되도록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신체적 및 인지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것을 설계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하여 에르고노믹스(ergonomics)라는 학문 분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르고노믹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인체공학’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학문의 분류로는 ‘인간공학’으로 구분됩니다. 에르고노믹스는 (1) 사람과 (2) 사람의 일(작업/행위)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사람의 신체적, 인지적, 감성적인 특징들을 이해하고, 이것을 우리가 일하는 방법, 일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나 기기, 일하는 환경, 일터의 문화와 규범 등을 만들어가는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에르고디자인(ergonomics + design)은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을 사람 중심으로 기획하고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 이야기)
전쟁 동안 산업과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전쟁물자를 만들던 기업들은 이제 대중을 위한 소비재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뭘 만들던지 잘 팔렸습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수 많은 경쟁기업들이 생겨났고, 점차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아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주는 회사’가 경쟁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과거 전쟁이나 산업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점차 ‘소비자나 사용자에 대한 이해’로 옮겨가게 됩니다. 더욱이, 누구나 컴퓨터로 일하고 공부하며, 작은 화면 안에서 수 많은 것들을 처리하며, 자율주행 자동차와 UAM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 오늘날, 에르고노믹스는 인류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