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고디자인의 철학 = 사람 중심의 문제 해결
인체공학적 설계, 즉 에르고디자인(ergo design)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철학에서 출발했습니다. 인체공학은 사람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특성을 고려하여 작업의 효율성/효과성 향상, 만족도 증대, 안전과 건강 증진, 최적의 사용자 경험 제공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오늘날 사용자경험(UX) 디자인,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뇌인지공학, ESG 등의 다양한 분야와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3부에 걸쳐서 인체공학의 발전 과정을 토대로 에르고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1부. 1차 &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그리고 일
2부. 전쟁으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
3부. 초격차 지식산업 시대, 고객 중심으로의 전환
1부. 1차 &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그리고 일
산업화 시대의 모습
이번 블로그에서는 1차 및 2차 산업혁명인 1700년대(18세기) 중후반에서 1900년대(20세기) 초반까지 약 150년 정도에 걸친 기간 동안의 시대적 모습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인체공학 및 에르고디자인의 출발점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700년대(18세기) 중후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증기기관’과 ‘기계식 공장’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제조공정의 혁신’을 중심으로 합니다.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천을 짜는 방직기부터 시작하여, 기계를 이용하여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산업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증기기관’에 이어 1800년대(19세기) 중후반, ‘발전기’와 ‘전동기(모터)’를 이용한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즉, ‘증기기관’을 통해 공장을 돌리던 것을 ‘전동기’가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증기기관’은 공장에 붙어있어야만 했으므로 도심은 매연으로 가득했습니다만, 발전소는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설치할 수 있었고, 전신주를 통해 ‘전동기’가 있는 곳까지 전기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에단호크 주연의 ‘테슬라’라는 영화가 그런 배경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후, ‘전동기’의 크기는 점차 작아졌고, ‘전기공학’이 더욱 발달하면서 공장의 모습도 이전과 많이 변하게 됩니다.

모더니즘의 양면성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개된 기술과 공학,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더불어 1800년대 중반부터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은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인간의 능력을 통해 사회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과학과 기술과 산업발전을 통해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는 미래 낙관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현실은 이러한 믿음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공장제 근로’라는 새로운 방식의 일거리가 등장하였고, 큰 공장을 돌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도시화’가 촉진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조는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과 수탈의 역사,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기계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자본가들은 기계를 통한 생산량을 높이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 공장을 돌렸을까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이러한 시대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기계장치의 부속품처럼 일을 하였는데, 그들이 일하는 환경과 여건은 전혀 사람 중심적이지 않았습니다. 에르고디자인의 역사는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빈부격차 문제와 노동자 경시 풍조가 나타났으며,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소외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은 모더니즘 사조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반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생산성을 뒷받침해야만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익이 침해되고 부당한 처우가 발생했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고용주에게 유리한 새로운 근로문화,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사회발전의 비전 등은 자본가들에게 더 힘을 실어주었지 노동자들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에르고디자인 관점에서의 비평
오늘은 산업화라는 이 거대한 물결이 파생한 부작용들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에너지들이 만들어 가는 ‘인간중심’의 가치관에 대하여, 인체공학 에르고디자인의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더니즘의 전제는 이렇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그래왔듯이, 사람은 자연에 맞서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산업화 과정에서의 가정도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요? 사실 사람이 항상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또는 “적응해야 한다”는 가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다음 블로그에서 ‘인적 요인’ 측면에서 다시 다뤄보겠습니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되었고(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가족의 목숨을 빼앗아가거나 노동자들의 건강을 헤치는 일들이 발생해 왔습니다. 여기서의 문제 중 하나는 산업사회로의 빠른 변화가 가져다준 것은 자연적이지 않고 인위적이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자들이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고려보다는 생산과 수익을 우선시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초기 산업혁명 시대의 모습들에 대한 예시들입니다.
- 저임금 (일자리에 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매우 많음. 고용주의 눈에 벗어나면 쉽게 해고됨)
-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규제 및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적 근거 부재 (근무일, 휴일, 근무 및 휴식시간, 작업환경, 안전과 보건, 작업강도, 해고, 보상금 등에 관한)
- 신체적 한계에 대한 인식 부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
- 맞지 않는 작업복 착용, 너무 높거나 낮은 작업 테이블에서 하루 15시간 서서 작업
- 어린이/청소년들도 하루 10시간씩 근로에 투입
- 춥고 어둡고 먼지와 유독가스(증기기관 매연)가 발생하는 환경에서 근무
- 안전문화 부재, 보호장비 부재로 잦은 사고 발생
기계가 도입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생산라인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때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에 관련된 제도가 충분히 확립되지도 않았고, 인간에 대한 학술적인 이해가 충분히 연구되지도 않았습니다. 산업현장에서의 ‘인적 요인’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인식되고, 관련하여 인간공학(ergonomics)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00년대 초중순입니다. (이는 다음 편에서 말씀드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도 연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2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체공학 에르고디자인의 관점에서는 암흑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그리고 에르고디자인의 철학
이렇게 모더니즘의 이상적인 미래관과 현실의 노동자 착취라는 양면성이 서로 모순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의 ‘노동운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그 중에는 과격하고 파괴적인 ‘러다이트(기계장치들을 파괴하는 운동)’와 같은 움직임들도 있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레 미제라블’과 같은 작품에서도 노동자들의 고된 삶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이 잘 드러납니다. 아쉬운 것은, 이때까지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에 대한 해결안을 찾지 못하고, ‘노동’과 ‘사회구조’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분별한 산업화와 고삐풀린 자본주의의 반대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조가 등장하였고, 이념적 갈등에 더하여 산업화에서 더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야망과 긴장감은 결국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인류는 뼈아픈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과 갈등의 시간 가운데에서도 여기에 저항하는 많은 노력들을 통해 인류는 점차 인간성에 대해 다시 성찰하기 시작하였고, 노동자의 권리도 점차 개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과도 연결되고, 에르고디자인의 역사와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에르고디자인은 단순헤 사람에 편한 제품의 모양이나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철학입니다. 기계나 제품이 아닌 사람이 핵심이 되며,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건강, 안전, 편안함, 만족감, 효율성을 고려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 착취가 아닌 근로자의 권익을 정당하게 지켜주는 방식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컴포랩스는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인간 중심의 사회 발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
오늘은 인체공학과 에르고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 중 하나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배경 중에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2부 ‘전쟁으로부터의 교훈’에서는 세계대전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통해 얻게 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에르고디자인이 더욱 대두된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