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만드는 기업보다 더 빨리 판단하는 기업
제품개발에서 가장 비싼 것은 설계 시간이 아니라 잘못된 아이디어에 계속 비용을 투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던 콘셉트가 여러 차례의 디자인 수정과 3D 설계, 시제품 제작을 거친 뒤에야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목표 고객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업이 잃는 것은 제작비만이 아닙니다. 개발팀의 시간, 금형과 테스트 비용, 출시 일정, 다른 제품에 투입할 수 있었던 자원까지 함께 묶입니다. 제품 하나의 실패가 커지는 이유도 대부분의 중요한 판단이 개발 과정의 서로 다른 시점에 흩어져 있고, 충분한 정보가 확보될 때쯤에는 이미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AI가 제품개발에서 만들어낼 가장 큰 경제적 가치는 디자인 한 장을 몇 초 빨리 생성하는 데 있기보다 중요한 판단을 더 앞선 단계로 이동시키는 것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생성형 AI가 만든 수많은 설계 대안도 그 자체로는 경쟁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급격히 늘어날수록 기업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지, 어떤 후보를 중단해야 하는지, 어느 설계가 실제 사용자를 더 넓게 수용하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제품개발 경쟁력은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능력과 함께 각 아이디어의 가능성과 위험을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확인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AI는 디자인 부서의 생산성 도구를 넘어 기업이 개발비를 어디에 투입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시장까지 가져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결국 제품개발의 속도를 바꾼다는 것은 모든 단계를 무조건 빠르게 수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패 가능성이 높은 방향에는 더 적게 투자하고 가능성이 높은 방향에는 더 일찍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설계 변수로 들어오는 실제 인간
하지만 제품의 가능성을 판단하려면 제품만 분석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제품은 결국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환경에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어버드는 귀 내부와 접촉하고, 스마트글래스는 코와 귀 사이에서 무게를 지탱하며, 자동차의 시트와 조작계는 탑승자의 자세와 팔·다리의 움직임을 전제로 합니다. 의료기기나 웨어러블처럼 신체와 오랫동안 밀착되는 제품에서는 몇 밀리미터의 형상 차이도 압박이나 이탈,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가구와 모빌리티에서는 앉아 있는 순간뿐 아니라 앉고 일어나고 손을 뻗는 과정까지 제품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따라서 실제 인간은 제품개발이 끝난 뒤 반응을 확인하는 대상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 안에 존재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이 지점에서 전통적인 평균값 중심 설계의 한계도 분명해집니다. 시장에는 ‘평균적인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체 비율과 체형, 연령, 자세와 움직임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같은 키의 사용자도 다리 길이와 몸통 비율이 다르고, 같은 머리둘레를 가진 사람도 얼굴과 귀의 3D 형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제품이라면 국가와 사용자 집단에 따른 차이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다양성을 모두 제품개발 과정에 포함시키는 데 상당한 측정·분석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 대표 치수나 제한된 사용자 테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3D 인체데이터가 설계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바뀌고, 서로 다른 사용자를 디지털휴먼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 자체를 하나의 설계 변수로 다룰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Human Fit이라는 하나의 검증 기능보다 더 큰 변화입니다. 제품을 먼저 만들고 사람에게 맞춰보는 방식에서,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지부터 제품의 형태와 함께 계산하는 방식으로 설계의 출발점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상검증이 확장하는 제품의 가능성
제품을 실제로 만들기 전에 다양한 사용자를 디지털 환경에서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테스트 비용 절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기업이 실물 시제품으로 열 가지 아이디어를 모두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디지털 상태에서 초기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 훨씬 넓은 설계 공간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제품의 크기와 형상을 바꾸었을 때 어느 체형에서 간섭이 발생하는지, 특정 조작 위치가 작은 사용자에게도 닿는지, 착용형 제품이 서로 다른 신체 형상에서 어떤 접촉을 만드는지 등을 제조 이전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상검증은 실제 사용자 테스트를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실제 테스트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제품을 더 잘 선별하기 위한 기술이 됩니다. 물리적인 시험은 더 중요한 후보와 더 까다로운 문제에 집중되고, 설계팀은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수정 비용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변화는 이 기술이 기업으로 하여금 지금보다 더 다양한 제품을 경제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할 가능성입니다. 대량생산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하나의 표준 제품이 유리했지만, AI와 디지털 검증으로 설계·평가 비용이 낮아질수록 특정 체형이나 연령, 생활환경을 고려한 제품도 이전보다 현실적인 사업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고령자의 움직임을 고려한 가구, 어린이의 도달범위를 반영한 생활제품, 서로 다른 귀 형상을 고려한 착용형 기기, 다양한 신체 조건에 대응하는 모빌리티와 의료기기처럼 그동안 시장 규모나 개발비 때문에 충분히 세분화하기 어려웠던 요구를 제품개발 초기에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맞춤 제품이 많아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품개발에서 검토할 수 있는 인간의 범위가 넓어지면 시장에서 제품으로 구현될 수 있는 삶의 범위 역시 넓어집니다. 기업에게는 새로운 고객과 제품군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사용자에게는 자신의 몸을 제품에 맞추는 대신 제품이 자신의 신체와 생활에 더 자연스럽게 맞는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SIZE LAB과 Doodll Beta가 연결하는 다음 단계
컴포랩스(Comfo Labs)가 구축해 온 기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만납니다. 컴포랩스가 오랫동안 축적한 3D 인체데이터와 인체공학 기술은 사람의 몸을 단순한 참고치가 아니라 제품개발에서 계산하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기반이며, 사이즈랩(SIZE LAB)은 이러한 Human Data를 실제 설계와 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품개발팀은 제품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사용자군과 신체 특성을 다르게 정의해야 합니다. 이어버드를 설계할 때 필요한 인간 정보와 자동차 시트나 의료기기, 손으로 조작하는 제품을 설계할 때 필요한 정보는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Human Data 활용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 개발하는 제품에서 어떤 인간의 특성이 중요한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실제 설계 판단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들(Doodll) Beta의 출시는 이 기술들을 실제 제품개발 작업과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두들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디자인을 탐색하며 스케치와 시각적 대안을 발전시키고 3D 제품 자산으로 이어가는 제품개발 환경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컴포랩스가 그리고 있는 더 큰 방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AI와 인간을 이해하는 데이터가 같은 개발 과정 안에서 작동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든 뒤 별도의 단계에서 뒤늦게 사용자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생각하고, 형상을 발전시키고, 실제 사람과의 관계를 검토하며, 그 근거를 가지고 다음 결정을 내리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개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개발 과정에서 얻은 판단과 검증 결과가 다음 설계에 활용되고, 다시 축적된 제품과 Human Data가 다음 프로젝트의 판단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면 AI의 가치는 단순 자동화를 넘어섭니다. 기업은 더 빨리 만드는 조직에서 더 빨리 배우는 조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컴포랩스가 SIZE LAB과 Doodll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변화도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더 많은 디자인을 생성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제품에 더 일찍 확신을 갖고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인간의 몸과 생활이 제품 설계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